3월, 낮의 따스함이 다가오는 그런 어느 날 밤에는 손을 비빌 만큼의 시린 바람이 서서히 부는 제주 어딘가에 위치한 동백 별장. 호텔이라는 막연히 커다란 표현보다는 무지막지하게 거대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건물을 등지고 앞으로는 검은 하늘에 구름도 없이 달 하나만 바라보며 술을 마셨습니다. 달이라는 안주와는 어울리지 않게 맥주를 마셨지만 술은 기호일 뿐, 분이기에 취하는 것이랍니다. 달랑 코트 하나만 입고 별다른 옷도 없이 아주 가볍게 간 제주였기에 살짝 몸을 떨리게 만드는 시린 바람은 오히려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되어주고 있었다고 혼자서 되뇌어봅니다. 현실은 오들오들 떨면서 마시는 노숙자?
술집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뭔가 알게 모를 향수가 피어오르는 술집입니다. 마당 있는 집을 개조해서 평상도 있고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테이블과 옛날식의 학교 의자 같은 것들에 몸을 기대어 한잔 두 잔 마시고 있노라면, 꽤나 운치 있는 밤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아마 누군가와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그때가 아무리 춥다 해도 다시 밖에서 마시자고 꼬실 생각입니다. 그만큼 느낌이 개인적으로 괜찮았습니다. 어릴 적 산골에 위치한 외가에서 밤에 모기풀 태우는 소리를 들으며 야식을 먹었던 그런 느낌과도 비슷한 느낌이라서 정감 있어요. 안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어요. 왠지 일반 술집 느낌이라면 기분 좋은 분이기가 깨질까 봐 겁이 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주도는 현재 거리두기 1.5단계로 모든 가계들이 자율시간 영업을 할 수 있어서 코로나로 억눌려있던 마음이 여기서 풀어졌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그립고 향수 어리고 좋았다랄까요. 서울도 제한이 풀어지면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서 코로나가 없어지고 마스크 없이 편하게 모든 이용시설을 이용하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미세먼지도 그렇습니다. 중국발 미세먼지 정말 싫네요. 정말 싫어요.
분이기는 이제 되었고 가게 분석입니다. 메뉴를 쭉 훑어보니 특색은 없습니다. 뭔가 딱히 이거다 하는 것들이 없는 쭉 나열한 기분이 드는 메뉴 구성이랄까요? 하긴 밥집에 간 것도 아니고 술집이면 이 정도면 양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꼭 이런 집들을 와서 드는 생각이 유독 저만 이런가 싶기도 할 때가 많습니다. 다들 술안주로 무엇을 먹나요? 그렇게 생각하다가 돌문어 볶음을 시켰습니다. 후에는 어묵탕도 시키긴 했지만요. 맥주에 오뎅탕 꽤나 배가 불러버리는 조합입니다. 각오해야 될 조합. 식사를 하고 왔다면 배가 터질 조합. 그것도 많이.
제주도에는 꽤나 분이기 있는 집들이 많습니다. 지역의 특성상 제가 간 곳은 관광지이기도 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아는 지인이 내년쯤 건물을 지어서 제주로 정착을 준비할 것이라고 하니, 그때는 저녁에 약속을 잡고 서울에서 바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반 뒤에 함께 만나 동백 별장 같은 멋진 집에서 술 한잔 기울이는 날이 올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